정치적 입장
검사는 세금도 국경도 정당도 선거도 묻지 않습니다. 그러니 여기 나온 값이 투표용지를 가리킬 수는 없습니다. 영어권 문헌이 이 척도에 붙인 Liberalism이라는 이름은 그래서 사람을 헷갈리게 하고, 우리말 이름에는 그 당파적 뜻이 애초에 없습니다. 위쪽 끝에 선 사람들은 오래전에 버린 방식을 되살리자는 쪽으로도 갑니다.
문항 열 개가 도는 자리는 하나입니다. 내가 쓰지 않은 규칙과 나 사이입니다. 전통을 묻고 권위를 묻고 자리 잡은 방식이 다시 볼 값어치가 있는지를 묻습니다. 어느 쪽 결론에 닿았는지는 한 문항도 묻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사안에서 하나도 겹치지 않는 두 사람이 같은 점수에 앉을 수 있습니다. 이 척도가 적는 것은 태도이지 결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하위요인이 사는 집은 개방성입니다. 낯선 것을 향한 식욕을 모아 둔 요인이지요. 다만 한국어에서 요인 이름과 이 척도 이름이 비슷하게 들려도 둘은 층이 다릅니다. 개방성은 여섯을 묶은 가족의 이름이고, 가치관의 유연성은 그중 규칙 하나만 맡은 여섯째 자리입니다. 상상력은 안쪽 세계로, 예술적 관심은 아름다움으로, 모험심은 낯선 장소로 향합니다. 이 척도가 겨누는 곳은 규범이고, 그 몫을 거의 혼자 집니다. 자기 요인과 같이 가는 정도는 다섯 자매 가운데 가장 약합니다.
이름도 한마디 필요합니다. 영어권 문헌에서 이 척도는 Liberalism으로 불리고, 그 단어는 지금의 정당 체계보다 훨씬 먼저 생겼습니다. 우리말 이름이 정치를 끌고 오지 않는 것은 다행이지만, 다른 자료를 열면 영어 이름을 곧 만나게 됩니다. 이 척도가 하는 일은 검사 안의 불안이나 겸손과 같습니다. 재어진 성향을 가리킬 뿐, 소속 집단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연구 문헌에서 이 영역은 보통 Values라는 이름을 달고, 옛 글에서는 비관습성으로도 불렸습니다. 여기 쓰는 문항은 존슨이 열어 둔 공개 자료에서 왔습니다.
이름 때문에 가장 많이 오해받는 척도라, 아래 세 줄은 다른 페이지보다 무겁습니다.
검사는 세금도 국경도 정당도 선거도 묻지 않습니다. 그러니 여기 나온 값이 투표용지를 가리킬 수는 없습니다. 영어권 문헌이 이 척도에 붙인 Liberalism이라는 이름은 그래서 사람을 헷갈리게 하고, 우리말 이름에는 그 당파적 뜻이 애초에 없습니다. 위쪽 끝에 선 사람들은 오래전에 버린 방식을 되살리자는 쪽으로도 갑니다.
낮은 점수는 독실함으로, 높은 점수는 그 반대로 읽히곤 하는데 둘 다 지나칩니다. 문항이 묻는 것은 자리 잡은 규칙을 얼마나 쉽게 다시 여는가이지 무엇을 믿는가가 아닙니다. 자기 전통과 다투는 신자는 높게 나오고, 믿음이 없어도 물려받은 구조가 무게를 받치고 있다고 보면 낮게 나옵니다.
관습을 묻는 일과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일은 서로 다른 일이고, 숫자가 분명합니다. 이 척도는 양보와 0.01, 분노와 마이너스 0.02, 신뢰와 0.04입니다. 1.00이 완전히 같다는 뜻인 눈금에서 이 정도면 사이가 없는 것입니다. 규칙이 왜 있는지 묻는 습관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습니다.
어느 쪽도 깨어 있는 쪽이 아닙니다. 각자 무리에 필요한 것을 사고, 상대 쪽이 잘 알아채지 못하는 화폐로 값을 치릅니다.
규칙을 다시 열 수 있는 주장으로 다루기 때문에, 어떤 관행이 만들어진 이유보다 오래 살아남은 순간을 알아봅니다. 이런 사람이 낀 조직은 죽은 절차를 몇십 년씩 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청구서는 마찰로 옵니다. 물음 하나를 다시 열 때마다 방의 시간이 들고, 한꺼번에 여러 개를 열면 사람들이 딛고 서 있던 바닥이 사라집니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규범과 권위를 기꺼이 다시 묻습니다. 정치색이 아니라, 늘 그래 왔다는 이유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물려받은 방식을 눌러 담은 경험으로 읽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는 여기서 대개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함께 일하기에 든든하고, 조용히 깨지는 것을 잘 지킵니다. 값은 관성으로 옵니다. 쓸모가 다한 규칙도 자리를 지킵니다. 서류철을 다시 열자고 미는 힘이 안쪽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래 이어져 온 방식과 규범에 무게를 둡니다. 전통과 권위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가운데 구간에 열 사람 중 넷쯤이 앉고, 그 가운데는 태도가 없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의 태도입니다. 몇 가지는 다시 열리고 대부분은 그대로 두며, 어느 쪽인지는 사안이 정합니다. 허무는 대신 고치는 자리입니다.
낮음과 보통과 높음을 가르는 선은 존슨이 쓰는 백분위 30과 70이며, 정치적 눈금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 점수가 적는 것은 규칙을 쥐는 방식이고, 결론이 옳은지는 채점하지 않습니다.
합계는 문항 열 개의 답으로 만들어지고, 그래서 눈금이 10점에서 시작해 50점에서 끝납니다. 아래 곡선의 바탕은 긴 판을 끝까지 마친 응시 기록 135,947건이고, 이웃한 하위요인들의 곡선보다 뚜렷하게 왼쪽에 앉습니다.
| 백분위 | 원점수 |
|---|---|
| 10 | 21 |
| 25 | 25 |
| 50 | 30 |
| 75 | 35 |
| 90 | 40 |
절반이 25점에서 35점 사이에 들고 중앙값은 30점이며, 원점수 30점은 52번째 백분위에 닿습니다. 나머지 다섯 개방성 하위요인의 평균은 35.3점에서 40.2점 사이라, 이 척도는 그 모두보다 아래입니다. 가까운 쪽과 다섯 점, 먼 쪽과 열 점 차이입니다.
이런 이름을 단 척도에는 집단 차이가 클 것 같지만, 둘 다 크게 나오지 않습니다.
여성 평균은 29.97점, 남성은 29.66점으로 간격은 마흔 점 폭에서 0.31점입니다. 서른 하위요인 중 성별을 이보다 덜 가르는 것은 둘뿐입니다. 나이가 더 움직입니다. 21세 미만과 60대 이후 사이에서 두 곡선 모두 한두 점을 잃는데, 성실성 하위요인들이 같은 구간에서 오르는 것과 반대 방향입니다. 가장 나이 든 칸은 성별당 250명 안팎이라 가볍게 읽습니다.
검사에서 가장 느슨한 척도입니다. 무엇과든 맺은 가장 굵은 선이 정돈성과 마이너스 0.28인데 그마저 다른 요인의 식구이고, 스물아홉 짝 가운데 열아홉이 0.15 아래에 머뭅니다. 개방성 자체가 다섯 가족 중 가장 헐렁한데, 이 척도는 그 안에서도 가장 헐렁합니다.
일터에서 이 척도가 값을 하는 자리는 절차를 다시 볼 때입니다. 이 단계가 무엇을 막아 주느냐고 묻고, 솔직한 답이 아무것도 아닐 때가 있습니다. 같은 습관이 비싼 자리는 납품 한가운데입니다. 이미 정해진 물음이 정해진 채로 있어야 팀이 굴러갑니다. 낮은 점수는 관리인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규칙이 왜 생겼는지를 기억해 두어 옛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게 합니다.
집에서 갈리는 것은 대개 답이 아니라 그 물음이 열려 있느냐입니다. 명절을 지내는 방식이나 아이를 기르는 방식을 한쪽은 처음부터 짜는 일로 다루고, 다른 쪽은 물려받아 넘겨줄 것으로 다룹니다. 여기서 멀리 떨어진 두 사람도 다툼의 자리가 절차라는 것을 보고 나면 대체로 잘 지냅니다.
위쪽 끝에서 쓸모 있는 움직임은 참기가 아니라 고르기입니다. 거의 모든 관습에 물음을 걸 수 있지만 값을 치를 만한 것은 몇 개뿐이고, 호의가 다 쓰이기 전에 그것을 갈라내는 것이 기술입니다. 아래쪽 끝에서는 다시 볼 시점을 달력에 적어 두는 데서 이득이 옵니다. 안에서 먼저 재검토를 부르는 신호가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쌍둥이를 따라간 연구들은 성격 차이의 절반쯤을 유전 쪽 몫으로 셉니다. 남은 몫의 큰 부분은 형제끼리도 함께 겪지 않는 경험에서 옵니다. 움직일 자리는 그래서 실제로 남아 있고, 다만 그 움직임이 느립니다. 십 년이 지나도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선 순서는 대체로 그대로이며, 변화는 표류의 모습으로 옵니다.
우리 규준에서 그 표류는 아래로 흐릅니다. 같은 구간에서 성실성 하위요인들은 가파르게 오르는데 이쪽은 내려갑니다. 여기에는 검사의 다른 어디보다 무거운 단서가 하나 붙습니다. 규준표는 한 사람을 평생 따라간 기록이 아니라 나이가 다른 사람들을 나란히 세운 값이라, 나이 듦과 세대가 그 안에서 똑같아 보입니다. 물려받은 규칙을 다루는 척도에서 이것은 사소한 얘기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연대에 스무 살이던 사람들은 서로 다른 규칙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300문항 판은 이 척도에 문장 열 개를, 120문항 판은 네 개를 씁니다. 열 개 중 일곱 개가 뒤집힌 문장이라 동의할수록 점수가 내려가고, 이보다 뒤집힌 문항이 많은 하위요인은 하나뿐입니다. 그래서 한 줄로 쭉 내려찍은 답은 뜻 없는 숫자만 남깁니다. 답은 1점에서 5점이고, 뒤집힌 문항을 되돌려 더한 합을 성별과 나이대에 맞는 규준표가 백분위로 바꿉니다.
알파는 같은 척도의 문항들이 서로 얼마나 맞물리는지 보여줍니다. 연구에서는 0.70 이상을 탄탄하다고 봅니다. 이 수치는 존슨의 공개 자료로 저희가 직접 계산했으므로 발표된 값과 대조할 수 있습니다.
문항은 이 페이지에 일부러 싣지 않았습니다. 먼저 읽어 둔 문장은 답을 바꾸기 때문에, 문항은 검사가 시작된 다음에만 나옵니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 자리가 어디쯤일지 슬라이더로 정해 둔 다음 검사를 치르고, 짐작이 얼마나 빗나갔는지 보면 됩니다.
0은 이 검사를 받은 거의 모든 사람보다 낮음, 100은 거의 모든 사람보다 높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예상이지 측정이 아닙니다. 검사는 응답을 실제 사람의 규준과 비교합니다.
아닙니다. 검사가 그것을 알 방법도 없습니다. 300개 문장 가운데 정당이나 정책이나 선거를 말하는 것은 하나도 없어서 자료에 정치 변수 자체가 없습니다. 이 척도가 적는 것은 규칙을 다시 여는 속도이고, 위쪽 끝의 사람들은 오래전에 버린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쪽으로도 밉니다.
그 이름은 성격 연구에서 왔고 정당을 가리키는 쓰임보다 앞섭니다. 문헌에서는 같은 척도가 Values로도 나오고 내용에는 그쪽이 더 맞습니다. 우리말에서는 가치관의 유연성으로 부릅니다. 검사와 결과와 이 페이지가 한 척도를 한 이름으로 불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점수는 없습니다. 높은 쪽은 고쳐 쓸 의향을 사고 마찰로 값을 치르며, 낮은 쪽은 이어짐을 사고 쓸모가 끝난 규칙이 남는 값을 치릅니다. 둘 다 필요하고, 쓸 만한 정보는 이 점수가 나머지 프로필과 만나는 자리에 있습니다.
모순이 아니고 흔한 모양입니다. 개방성은 여섯 하위요인을 묶은 이름이고 이 척도는 그중 하나라, 요인 점수가 높아도 규칙을 대하는 자리는 따로 움직입니다. 자기 요인의 나머지와 맺은 연결은 0.34로 검사에서 둘째로 느슨합니다. 나머지 다섯의 평균은 35.3점에서 40.2점, 이 척도는 29.8점입니다.
자료는 아니라고 답합니다. 이 척도와 양보는 0.01, 분노는 마이너스 0.02, 이타성은 마이너스 0.01이라 측정이 닿는 한 거의 영입니다. 어디서든 가장 굵은 선은 정돈성과 마이너스 0.28이니, 이 모양이 걸린 곳은 사람이 아니라 원하는 구조의 양입니다.
존슨의 공개 자료에서 문장 열 개짜리 판의 내적 일관성은 0.79, 네 개짜리 판은 0.65입니다. 0.65는 서른 개 짧은 하위요인 가운데 가장 낮은 값입니다. 짧은 판도 다섯 요인은 잘 보여 주지만, 이 자리에서 문항 네 개가 주는 것은 측정이 아니라 힌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