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 추구(E5)
개방성과 외향성 사이의 서른여섯 쌍 가운데 가장 가깝고, 값은 0.43입니다. 그래도 원하는 것이 서로 다릅니다. 자극 추구는 소리를 키워 달라고 합니다. 속도, 소음, 몸이 감당하는 위험 쪽입니다. 이 척도는 간판을 바꿔 달라고 합니다. 같은 비탈을 십 년 동안 빠르게 내려오면서 다른 비탈은 한 번도 가 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척도는 좁은 물음 하나만 던집니다. 아는 쪽과 모르는 쪽이 나란히 놓였을 때 어느 쪽이 더 당기는가입니다. 문항은 되풀이되는 일상, 변화의 양, 처음 가는 곳, 먹어 본 적 없는 음식, 써 본 적 없는 방식 언저리를 돕니다. 그 시도가 잘 끝났는지, 집에서 얼마나 멀었는지는 어디에서도 묻지 않습니다. 해마다 봄이면 부엌을 뜯어고치면서 사는 지역 밖으로는 나가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여기서 높이 나옵니다.
개방성을 여섯으로 가른 고전적인 분류에서 이 척도의 이름은 행동이고, 그 말이 정확합니다. 나머지 다섯 자매는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묻습니다. 떠오르는 그림, 아름다움, 감정, 생각, 가치 같은 것입니다. 이 척도만 화요일에 무엇을 했는지 묻습니다. 그래서 식구들과 묶이는 힘도 느슨합니다. 요인 총점과는 0.61, 나머지 다섯과는 0.41이고, 이 값은 서른 하위요인 가운데 아래에서 다섯째입니다.
이 척도에서 제일 말이 많은 숫자는 음수이고, 개방성 바깥에 있습니다. 자의식과 마이너스 0.46, 불안과 마이너스 0.40, 스트레스 취약성과 마이너스 0.37입니다. 사람을 가르는 것은 호기심의 크기라기보다, 남이 보는 앞에서 초보가 되는 값이 얼마나 비싸게 느껴지는가입니다.
학술 문헌은 개방성 여섯 갈래를 적을 때 이 자리를 행동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행동으로 드러난 개방성이라는 풀이도 나란히 씁니다. 문장은 골드버그가 열어 둔 공개 항목 묶음에서 왔고, 규준은 존슨이 계산했습니다.
모험이라는 말을 함께 쓰는 이웃이 셋 있고, 셋 다 높은 점수의 뜻을 다르게 바꿔 놓습니다.
개방성과 외향성 사이의 서른여섯 쌍 가운데 가장 가깝고, 값은 0.43입니다. 그래도 원하는 것이 서로 다릅니다. 자극 추구는 소리를 키워 달라고 합니다. 속도, 소음, 몸이 감당하는 위험 쪽입니다. 이 척도는 간판을 바꿔 달라고 합니다. 같은 비탈을 십 년 동안 빠르게 내려오면서 다른 비탈은 한 번도 가 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름이 비슷할 뿐 같은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것을 원하는 일과 그것을 함부로 다루는 일은 여기서 거의 이어지지 않습니다. 신중성과는 마이너스 0.16, 무절제와는 마이너스 0.05로 이만한 표본에서는 사실상 관계가 없는 값입니다. 위쪽에는 반년 동안 나라를 조사하고 나서 표를 끊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척도가 적는 것은 무엇에 끌리는가이지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가가 아닙니다.
거리는 형편입니다. 돈, 비자, 몸 상태, 어린아이, 일의 모양이 일정의 대부분을 정하고 그중 어느 것도 성격이 아닙니다. 척도는 도장이 아니라 끌림을 잽니다. 그래서 식구들 가운데 제일 가까운 쪽이 지적 호기심이고 값은 0.40입니다. 해 보지 않은 생각과 걸어 보지 않은 골목은 사촌 사이였던 셈입니다.
어느 쪽도 더 용감한 사람이 아닙니다. 한쪽은 폭을 사고 깊이로 값을 치르며, 다른 쪽은 같은 거래를 반대 방향으로 합니다.
저녁 한 번을 쓰는 방법이 둘이든, 한 달이나 한 직업을 쓰는 방법이 둘이든, 손은 아직 해 보지 않은 쪽으로 갑니다. 새로움이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상이 아니라 주의가 저절로 흘러가는 자리여서, 첫 시도가 둘레에서 예상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쌓입니다. 값은 뒤쪽 절반에서 나옵니다. 한 철 배우다 만 언어, 석 달째에 내려놓은 악기 같은 것들입니다.
낯선 것에 마음이 열려 있습니다. 새로운 곳과 새로운 방식을 즐겨 찾고, 자극 자체보다 다름과 넓힘에 이끌립니다.
남들이 되풀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실제 이득이 나옵니다. 네 번째 계절에 걷는 같은 길, 마침내 손에 붙은 조리법, 보이지 않을 만큼 익은 연장 같은 것입니다. 늘 시작점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열리지 않는 깊이가 이쪽에는 열려 있습니다. 값은 조용히 쌓입니다. 끝내 맛보지 않은 쪽과 필요한 기간보다 오래 붙들고 있는 방식입니다.
익숙한 것에 마음이 놓입니다. 검증된 길을 다시 걷는 편이 새 길을 찾는 것보다 편합니다.
열 명 중 네 명이 가운데 구간에 듭니다. 남성은 33점에서 39점, 여성은 32점에서 38점입니다. 이 자리는 새로운 것이 앞에 놓이면 집어 들지만 매주 찾아 나서지는 않아서, 자리 잡은 생활에도 해마다 낯선 방이 몇 칸씩 늘어납니다.
낮음과 보통, 높음은 이 규준이 따르는 30/40/30 관행으로 갈립니다. 구간은 무엇에 끌리는지를 말할 뿐, 얼마나 새로움이 많은 생활을 꾸려 냈는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어느 자리도 진단이 아닙니다.
답 하나에 1점에서 5점이 붙고 문항이 열 개이니 총점은 10점에서 50점 사이에 놓입니다. 아래 곡선은 긴 판을 끝까지 마친 135,947명의 답으로 그렸고, 좌우가 거의 대칭입니다. 평균은 35.28점으로 이 자리에서 보기보다 드문 모양입니다.
| 백분위 | 원점수 |
|---|---|
| 10 | 27 |
| 25 | 31 |
| 50 | 36 |
| 75 | 40 |
| 90 | 44 |
중앙값은 남녀 모두 36점이고 전체의 절반가량이 30점과 40점 사이에 모입니다. 35점은 남성에게 46번째, 여성에게 47번째 백분위입니다. 백분위는 같은 성별과 연령대에서 이 검사를 받은 사람들 사이의 자리를 말합니다.
집단 평균이 할 말이 가장 적은 페이지이고, 그 없음이 바로 이 척도의 발견입니다.
남성 평균은 35.4점, 여성은 35.2점으로 간격이 0.26점입니다. 40점 폭의 눈금에서 이 정도면 서른 하위요인 가운데 뒤에서 둘째이고, 더 작은 쪽은 주장성뿐입니다. 나이도 보태지 않습니다. 성별과 연령을 교차한 여덟 칸이 34.7점과 35.8점 사이에 모여 폭이 1.2점이고, 이는 검사 전체에서 가장 좁습니다. 가장 나이 든 두 칸은 성별마다 250명 안팎이라 그 끝자락은 힌트로만 읽는 편이 좋습니다.
개방성은 서로 다른 여섯 갈증을 한 점수로 내놓고, 그중 이 척도만 기분이 아니라 일정표에 남습니다. 식구 안에서는 지적 호기심 0.40과 예술적 관심 0.37이 가깝고, 감수성은 0.11로 가장 멉니다.
일터에서 높은 점수는 일의 낯선 절반 쪽에서 손을 듭니다. 새로 여는 시장, 아무도 깔아 보지 않은 도구, 팀이 다뤄 본 적 없는 업종의 고객입니다. 조직은 이런 사람에게서 배움을 싸게 얻고, 값은 유지의 해에 치릅니다. 돌아가는 절차를 갈아 치우지 말고 그대로 이어 가야 하는 시기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이 차이는 큰 일이 오기 한참 전에 사소한 일정에서 먼저 드러납니다. 한쪽은 같은 곳을 다시 가는 것을 손해로 세고, 다른 쪽은 그 되풀이야말로 단골이 있는 이유라고 봅니다. 부딪히는 자리는 대개 여행 자체가 아니라, 누가 늘 제안하고 누가 늘 사양하는가입니다.
성장 쪽에서 이 척도가 남기는 물음은 얼마나 더 대담해지느냐가 아니라 시작한 것들이 어디까지 갔느냐입니다. 위쪽에서는 재미있는 구간이 끝나는 자리에 실력이 살고 있고, 선반에는 그 앞에서 멈춘 것들이 놓입니다. 아래쪽에서는 낯선 골목이 낯선 나라와 같은 물음을 던지는데도 그 물음이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성격 차이의 절반쯤은 타고난 몫이라는 것이 쌍둥이 자료가 오래 내놓은 답입니다. 남은 몫은 한집에서 자란 형제도 똑같이 겪지 않는 각자의 경험 쪽에 더 실립니다. 움직일 자리는 분명히 있지만, 결심한 하루의 속도가 아니라 습관이 바뀌는 속도로 움직입니다.
이 척도가 이상한 것은 사람들 전체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른 하위요인에는 저마다 나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센 자극을 향한 갈증은 무너지고, 정돈성은 오르고, 친근함은 한 점을 얻습니다. 여기서는 남성 평균이 21세 미만 34.8점, 중년 35.8점, 60대 이후 34.9점이고 여성 쪽 곡선은 평생 한 점 안에 머뭅니다. 규준표는 한 사람을 따라간 기록이 아니라 나이가 다른 사람들을 같은 날 세워 본 것입니다.
300문항 검사는 이 하위요인을 문장 열 개로, 120문항 검사는 네 개로 잽니다. 답은 1점에서 5점까지이고 열 중 여섯이 반대 방향으로 쓰여 있어, 그 문장에 그렇다고 답할수록 총점은 내려갑니다. 역채점 문항은 합산 전에 뒤집고, 나온 합은 같은 성별과 연령대의 규준표에 견주어 백분위로 읽습니다.
알파는 같은 척도의 문항들이 서로 얼마나 맞물리는지 보여줍니다. 연구에서는 0.70 이상을 탄탄하다고 봅니다. 이 수치는 존슨의 공개 자료로 저희가 직접 계산했으므로 발표된 값과 대조할 수 있습니다.
문장 자체는 이 페이지에 옮기지 않았습니다. 표현을 미리 읽고 나면 답이 달라지기 때문에, 검사를 시작한 뒤 화면에서 처음 만나도록 두었습니다.
검사를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 자리가 어디쯤일지 슬라이더로 먼저 표시해 보세요. 그다음 문장에 답하고 짐작이 얼마나 빗나갔는지 보면 됩니다.
0은 이 검사를 받은 거의 모든 사람보다 낮음, 100은 거의 모든 사람보다 높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예상이지 측정이 아닙니다. 검사는 응답을 실제 사람의 규준과 비교합니다.
아닙니다. 자료가 유난히 분명한 자리입니다. 신중성과는 마이너스 0.16, 무절제와는 마이너스 0.05이고 135,947명의 자료에서 이 정도면 관계가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안 해 본 쪽을 원하는 습관과 재 보지 않고 움직이는 습관은 서로 다릅니다.
가운데 구간은 50점 만점에 남성 33점에서 39점, 여성 32점에서 38점입니다. 대부분의 하위요인과 달리 눈금 한가운데가 실제 한가운데에 가깝습니다. 35점이면 남성은 46번째, 여성은 47번째 백분위에 섭니다.
이유보다 크기를 먼저 아는 자리이고, 그 크기가 놀랍습니다. 성별과 연령을 교차한 여덟 칸이 모두 34.7점과 35.8점 사이에 들어 서른 하위요인 가운데 폭이 가장 좁습니다. 옆자리와 대비가 뚜렷합니다. 새로움이 아니라 자극의 세기를 원하는 자극 추구는 같은 구간에서 10점 넘게 잃습니다.
거의 다르지 않습니다. 남성 35.4점, 여성 35.2점으로 간격은 0.26점이고 서른 하위요인 가운데 뒤에서 둘째입니다. 개방성 안에서는 짚어 둘 만합니다. 같은 요인에 검사 전체에서 가장 큰 남성 우위인 지적 호기심과, 여성 쪽으로 가장 넓게 기운 축에 드는 예술적 관심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방성은 요인이고 이것은 여섯 하위요인 가운데 하나이며, 나머지와 묶이는 힘이 여섯 중 가장 약합니다. 요인 총점과 0.61, 자기 자신을 뺀 나머지와 0.41입니다. 그래서 요인 점수가 보통이어도 여기에 대해 말해 주는 것이 적습니다. 철학책을 읽으면서 십 년째 같은 점심을 시키는 사람도, 삼 년마다 사는 나라를 바꾸는 사람도 그 뒤에 있을 수 있습니다.
존슨이 공개한 자료로 계산한 알파가 열 문장 판에서 0.819, 네 문장 판에서 0.714입니다. 긴 판은 단단하고 짧은 판은 넓은 구간으로만 쓸 만합니다. 짧은 판에는 치우침도 있습니다. 네 문장 가운데 셋이 반대 방향이라 짧은 점수는 무엇에 아니라고 답했는지에 기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