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
연구는 완벽주의를 둘로 나눕니다. 높은 기준을 향해 손을 뻗는 쪽과, 거기 못 미칠까 두려워하는 쪽입니다. 이 척도가 담는 것은 앞쪽 절반뿐입니다. 뒤쪽은 신경성에 살고, 우리 자료에서 성취 추구와 불안의 관계는 마이너스 0.19에 그칩니다. 높은 기준에 두려움이 딸려 오지는 않습니다.
성취 추구는 자기 기준을 얼마나 높게 잡고 얼마나 빨리 다시 올리려 하는지를 기록합니다. 문항은 탁월한 결과를 겨냥하는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목표를 고르는지, 하나를 이루고 나면 만족이 남는지 아니면 안절부절못하게 되는지를 묻습니다. 종이에 적힌 성과가 아니라 더 바라는 마음의 크기가 여기에 들어옵니다.
이 하위요인은 성실성 안에 있습니다. 성실성은 목표와 질서, 미더움을 모아 놓은 요인이고 성취 추구는 그 한복판에 가깝습니다. 요인 총점과 묶이는 정도가 0.79로 자기 규율 하나에만 뒤집니다. 더 큰 결과를 바라는 성향과 그것을 주 단위로 만들어 내는 성향은 서로 다르고, 둘은 자주 갈라집니다. 요인 점수가 같아도 이 눈금이 다르면 두 사람의 한 해는 다르게 흘러갑니다.
프로필 135,947건에서 이 척도의 평균은 50점 만점에 37.6점입니다. 같은 가족 여섯 가운데 세 번째로 높고 자기 규율보다 7점 가까이 위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시간표보다 야심을 인정하기가 더 쉽습니다. 그래서 원점수 38점은 무리의 한가운데이고, 위쪽 10분의 1은 45점에서야 열립니다. 아래쪽 구간도 그만큼 흔해서 열 명 가운데 셋이 그곳에 있습니다.
연구 문헌은 이 척도를 Achievement Striving이라는 이름으로 그대로 쓰고, 더 오래된 성취 동기 연구가 같은 밭을 갈아 왔습니다. 문항 자체는 존슨이 공개한 자유 이용 IPIP 판입니다.
야심이라는 말은 이곳 어떤 특성보다 빠르게 남의 뜻을 끌어옵니다. 높은 점수에서 아래 세 가지를 읽어 내는 일이 잦은데, 척도가 잰 것은 그중 어느 것도 아닙니다.
연구는 완벽주의를 둘로 나눕니다. 높은 기준을 향해 손을 뻗는 쪽과, 거기 못 미칠까 두려워하는 쪽입니다. 이 척도가 담는 것은 앞쪽 절반뿐입니다. 뒤쪽은 신경성에 살고, 우리 자료에서 성취 추구와 불안의 관계는 마이너스 0.19에 그칩니다. 높은 기준에 두려움이 딸려 오지는 않습니다.
몇 시간을 일하느냐는 이 척도 어디에서도 묻지 않습니다. 긴 시간은 성격만큼이나 자리와 상사에서 자라 나오고, 멈추지 못하는 과로는 임상 쪽에서 다르게 읽습니다. 여기서 야심이 붙는 것은 길이가 아니라 속도입니다. 요인 바깥에서 가장 강한 연결은 활동성으로 0.58입니다.
이 둘은 성실성 안에서 가장 가까운 짝이고 관계는 0.70입니다. 하위요인 435쌍 가운데 세 번째로 가까워서 한 가지 성질처럼 이야기되지만, 같은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묻는 것은 얼마나 높이 겨누는가이고, 자기 규율이 묻는 것은 재미가 사라진 뒤에도 일이 이어지는가입니다.
한쪽 끝은 지나온 거리를 사고 만족을 값으로 냅니다. 다른 쪽은 만족을 지키고 닿는 범위를 값으로 냅니다.
손끝보다 조금 먼 곳에 목표를 두고, 거기 올라선 순간 그 자리가 새 바닥이 됩니다. 가까운 사람들은 당신의 충분함이 자기들 것보다 높다는 데 익숙해집니다. 다음 칸이 늘 눈에 들어와서 지금 서 있는 칸에는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청구서는 쉬는 자리에서 옵니다. 도착의 기쁨은 하루쯤 가고, 지나온 거리는 곧바로 셈에서 빠집니다.
높은 목표를 세우고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기대되는 것보다 더 해내려는 힘이 늘 함께합니다.
충분히 좋은 결과가 어떤 모습인지 정해 두고 더는 그것과 다투지 않습니다. 다음 한 칸을 쫓느라 남들이 쓰는 시간이 그대로 비어 있습니다. 평범한 하루는 지나가는 동안 주의를 받습니다. 값은 수십 년에 걸쳐 드러납니다. 쓸 일이 없던 역량은 끝내 쓰이지 않습니다.
높은 목표를 좇기보다 지금의 충분함에 만족합니다. 애써 앞서 나가려 하지는 않습니다.
가운데 구간에는 열 명 중 네 명이 들고, 남성은 대략 34점에서 41점, 여성은 36점에서 42점입니다. 그 자리의 야심은 필요할 때 켜집니다. 중요한 목표에는 제대로 밀어붙이고, 아닌 목표에는 솔직하게 어깨를 으쓱합니다.
낮음과 보통, 높음은 존슨의 백분위 관행 30/40/30을 따를 뿐 성공의 문턱이 아닙니다. 높은 점수는 자기 기준이 놓인 높이를 말하지 이룬 것을 말하지 않고, 낮은 점수는 고쳐야 할 모자람이 아닙니다.
아래 곡선은 300문항 판을 끝까지 마친 프로필 135,947건에서 나왔습니다. 가로축의 원점수는 문항 열 개에 매긴 답을 그대로 합한 값이고, 답 하나가 가질 수 있는 폭은 1점부터 5점까지입니다.
| 백분위 | 원점수 |
|---|---|
| 10 | 29 |
| 25 | 34 |
| 50 | 39 |
| 75 | 43 |
| 90 | 47 |
중앙값은 남성 37점, 여성 38점이고 각 집단의 가운데 절반은 32점에서 42점, 34점에서 43점 사이에 놓입니다. 척도 자체가 높이 서 있어서 평범해 보이는 38점이 정확히 한가운데입니다. 위쪽 10분의 1은 남성 45점, 여성 46점에서 열립니다. 백분위가 견주는 상대는 온 세상이 아니라 성별과 나이대가 같은 응시자들입니다.
여기 집단 차이는 둘인데, 무게가 실리는 쪽은 하나뿐입니다.
여성 평균은 38.2점, 남성은 37.1점으로 간격은 1점을 겨우 넘고 서른 하위요인 가운데 아홉 번째로 작습니다. 나이가 하는 일이 더 큽니다. 남성은 21세 미만 35.3점에서 60대 이후 39.8점으로, 여성은 36.9점에서 40.3점으로 올라갑니다. 가장 나이 든 칸은 성별당 250명 남짓이고 서른 하위요인이 함께 쓰는 칸이라, 그 끝자락은 확정이 아니라 방향으로 읽는 편이 안전합니다.
자기 규율을 빼면 이 척도만큼 요인 총점에 바싹 붙은 형제가 없습니다. 아래 그림은 나머지 다섯과 나란히 놓고, 가족 밖에서 어울리는 상대도 같이 보여 줍니다. 한 줄은 다시 볼 값어치가 있습니다. 외향성의 활동성은 모형 어디에도 이보다 가까운 짝이 없습니다. 주장성은 0.45로 뒤를 잇고, 우울감은 마이너스 0.40으로 반대편에 섭니다.
일에서 이 척도는 무엇에 손을 드는지를 정합니다. 높은 쪽은 지난번보다 한 치수 큰 일을 집어 들고, 이룬 뒤 새로 채워지지 않은 목표는 오래 조용히 있지 못합니다. 값은 계속 올라가는 천장입니다. 십 년을 내리 해내고도 앞서 있다는 느낌은 오지 않습니다. 낮은 쪽은 맡은 일의 모양을 지키고 그 경계를 방어하며, 가끔 순서에서 밀리는 것으로 값을 냅니다.
집에서 야심은 주의가 어디로 가는지로 드러납니다. 높은 쪽의 추진력은 방 건너에서 보면 감탄스럽고 옆에 앉으면 버겁습니다. 쫓는 대상이 대체로 그 방보다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낮은 쪽과는 평범한 토요일을 짜기가 쉽고, 애정을 앞으로 나아가는 일로 읽는 상대는 그 편안함을 식은 것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이 차이는 말다툼보다 일정표에서 먼저 보입니다.
성장 쪽에서 실제 질문은 야심의 양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높은 끝에서 이 특성은 밀어 주는 힘은 주고 점검은 거의 주지 않아서, 스무 살에 물려받은 목표가 마흔에도 검사 없이 돌아가곤 합니다. 낮은 끝에서 변화가 온다면, 그것은 뻗어 볼 값어치가 있었던 한 가지를 통해 옵니다.
쌍둥이 연구를 보통대로 읽으면 이런 특성의 개인차 가운데 절반쯤이 유전으로 돌아가고, 남는 몫의 큰 부분은 한 지붕 아래 자란 사람들끼리도 나누어 갖지 않는 경험 쪽으로 갑니다. 그래도 잘 버티는 것은 순서입니다. 스무 살에 자기에게 까다로운 사람은 쉰에도 까다로운 쪽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 규준에서는 가장 젊은 집단과 가장 나이 든 집단 사이에 4점쯤의 상승이 보이고, 성실성 여섯 하위요인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같은 사람을 따라간 기록이 아니라 나이가 다른 사람들을 한자리에 놓고 견준 값이라, 이 기울기는 경향이지 시간표가 아닙니다. 야심은 크기를 그대로 둔 채 모양만 바꾸기도 합니다. 쉰에 겨누는 대상이 스물에 겨누던 대상과 같은 경우는 드뭅니다.
긴 판은 이 하위요인에 문장 10개를, 짧은 판은 4개를 씁니다. 답 하나가 1점에서 5점까지 무게를 갖고, 뒤집힌 문항은 더하기 전에 방향을 되돌립니다. 합계는 성별과 연령대별 규준표에 견주어 백분위로 바뀝니다. 이 척도는 축약을 잘 견딥니다. 알파가 0.84에서 0.80으로만 내려가서, 서른 하위요인 가운데 여섯 번째로 손실이 작습니다.
알파는 같은 척도의 문항들이 서로 얼마나 맞물리는지 보여줍니다. 연구에서는 0.70 이상을 탄탄하다고 봅니다. 이 수치는 존슨의 공개 자료로 저희가 직접 계산했으므로 발표된 값과 대조할 수 있습니다.
열 문장의 문구는 이 페이지에 옮기지 않았습니다. 먼저 읽어 두면 답이 달라지므로, 문항은 검사가 시작된 뒤에만 화면에 나옵니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가 어디쯤 서 있다고 보는지 마커를 옮겨 표시한 다음 검사를 받아 보세요. 이 짐작은 지금 쫓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갑니다. 잘 풀리는 일 하나가 그 자리를 통째로 밀어 올리기도 합니다.
0은 이 검사를 받은 거의 모든 사람보다 낮음, 100은 거의 모든 사람보다 높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예상이지 측정이 아닙니다. 검사는 응답을 실제 사람의 규준과 비교합니다.
하나는 기준의 높이를 정하고, 다른 하나는 재미가 사라진 뒤에도 일이 이어지는지를 정합니다. 둘의 관계는 0.70으로 성실성 안에서 가장 가까운 짝입니다. 갈라지는 자리에서는 높은 기준이 얕은 지구력 위에 놓일 때 가장 매서운 자기 비판이 나오는데, 그 판정이 공정한 경우는 드뭅니다.
아닙니다, 그것이 한가운데입니다. 우리 표본에서 이 척도는 통째로 높이 서 있습니다. 중앙값이 남성 37점, 여성 38점이고 위쪽 10분의 1은 45점이나 46점에서야 열립니다. 원점수는 성별과 나이대의 규준표에 견주기 전까지 아무 뜻도 갖지 못합니다.
이 척도에서는 아닙니다. 성취 추구와 자극 추구가 함께 움직이는 정도는 0.006으로, 모형 안에서 관계 없음에 가장 가까운 축에 듭니다. 하위요인 435쌍 가운데 0에 더 붙은 것은 일곱뿐입니다. 더 큰 결과를 바라는 마음과 더 짜릿한 자극을 바라는 마음은 서로 다른 식욕입니다.
아닙니다. 문항은 남이 아니라 자기의 지난 결과를 맞은편에 세우고, 겨루기에 대해서는 묻지 않습니다. 해마다 자기 기준을 올리면서 남의 자리에는 무심할 수도 있고, 꿈쩍도 하지 않는 기준 안에서 사납게 겨룰 수도 있습니다. 겨루기를 즐기는 성향은 다른 축에 삽니다.
성인기를 지나며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수준이 조금씩 올라가니 여기 못 박힌 것은 없지만, 그 이동은 주가 아니라 해로 셉니다. 행동은 성향보다 빠릅니다. 경쟁자나 마감, 눈에 보이는 사다리는 이번 분기에 무엇에 손을 뻗을지를 바꾸면서도 척도 위의 자리는 옮기지 않습니다.
긴 판의 알파는 0.84, 문장 네 개짜리 짧은 판은 0.80이고 둘 다 존슨이 공개한 자료로 계산했습니다. 두 값의 차이는 서른 하위요인 가운데 여섯 번째로 작아서, 짧은 검사가 거의 무디게 만들지 못하는 몇 안 되는 척도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