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존감
남보다 낫지 않다고 여기는 일과 자기를 못났다고 여기는 일은 같지 않습니다. 겹치는 땅은 있습니다. 우울감과는 0.35, 자기효능감과는 마이너스 0.32입니다. 두 값 모두 실재하고 두 값 모두 작아서 각 척도의 아홉 할쯤은 그 바깥에 남습니다. 겸손이 위쪽이면서 자기 힘에 대한 평가는 평범한 사람이 여기서는 흔합니다.
이 척도는 내가 둘레 사람들보다 낫다는 생각이 얼마나 편안한지 묻습니다. 문항은 자기를 우월하게 여기는 마음,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느낌, 방에서 중요한 사람 노릇을 하는 즐거움 언저리를 돕니다. 무엇을 이뤘는지는 어느 문항도 묻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력이 똑같은 두 사람이 눈금의 양 끝에 앉는 일이 생깁니다. 세어지는 것은 내세우는 말이지 그 뒤에 놓인 실적이 아닙니다.
이 하위요인이 자기 요인을 붙드는 힘은 서른 척도를 통틀어 가장 약합니다. 나머지 다섯을 합친 것과는 0.26으로 서른 중 제일 낮고, 자매를 하나씩 놓고 보면 평균 0.20이라 이 또한 제일 낮습니다. 신뢰와는 마이너스 0.06이니 사실상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는 일과 자기 이야기를 아끼는 일은 서로 다른 물음인데, 요인 총점은 둘을 한 숫자로 내놓습니다.
점수는 그날의 기분이 아니라 굳은 습관을 적습니다. 자기 자리를 다루는 방식은 스무 살에도 예순에도 비슷하게 보이고, 우리 규준에서 평생 움직이는 폭은 서른 척도 가운데 거의 제일 작습니다. 어제 회의에서 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에 대해서는 이 숫자가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습니다.
연구 문헌은 이 척도를 겸손이라는 이름 그대로 쓰고, 여섯 요인 모형 HEXACO에서는 이웃한 땅이 정직과 겸양이라는 요인 안에 놓입니다. 문항은 존슨이 공개한 자유 이용 묶음에서 왔습니다.
일상어는 한 단어 아래에 서로 다른 세 가지를 넣어 둡니다. 숫자는 셋을 꽤 깨끗하게 갈라놓고, 그 구분이 자기 점수를 읽는 방식을 정합니다.
남보다 낫지 않다고 여기는 일과 자기를 못났다고 여기는 일은 같지 않습니다. 겹치는 땅은 있습니다. 우울감과는 0.35, 자기효능감과는 마이너스 0.32입니다. 두 값 모두 실재하고 두 값 모두 작아서 각 척도의 아홉 할쯤은 그 바깥에 남습니다. 겸손이 위쪽이면서 자기 힘에 대한 평가는 평범한 사람이 여기서는 흔합니다.
자의식은 남이 보는 앞에서 오는 불편함이고, 겸손은 자기 자리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입니다. 식구 바깥에서 겸손과 가장 가까운 상대가 이 척도로 값은 0.46인데도 둘은 갈라집니다. 가득 찬 방 앞에서 조금도 떨지 않는 사람이 저녁 내내 그 일을 자기가 했다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겸손이 이 검사 전체에서 가진 가장 강한 상대는 주장성이고 값은 마이너스 0.57입니다. 435개 짝 가운데 다섯째로 반대편에 놓인 짝이며, 우호성과 외향성이 만드는 서른여섯 짝 중에서는 가장 음수입니다. 그래도 겹치는 폭은 각 척도의 삼분의 일쯤입니다. 원하는 결정을 관철하는 일과 내가 더 낫다고 말하는 일은 다른 행동이고, 여기서 세는 것은 뒤쪽뿐입니다.
한쪽 끝은 예의가 아니고 다른 쪽 끝은 오만이 아닙니다. 둘 다 관심을 다루는 평범한 방식이고, 각각 어딘가에서 값을 치릅니다.
내가 말하기보다 일이 말해 주기를 바랍니다. 공은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사람에게 돌아가고, 견주는 자리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사람들이 소리 내어 순위를 매기기 시작하면 조용해집니다. 청구서는 목소리가 화폐인 곳에서 옵니다. 연봉을 다시 정할 때도 사람을 뽑을 때도, 자기 몫을 먼저 말한 쪽이 세어집니다.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한발 물러섭니다. 잘한 일도 조용히 두고, 자랑을 불편해합니다.
무엇을 잘하는지 뜸 들이지 않고 말합니다. 남들이 날씨를 이야기할 때 쓰는 그 평평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내가 무엇을 들고 오는지 아무도 짐작할 필요가 없고, 맡은 몫은 빠짐없이 세어집니다. 값은 듣는 쪽에서 생깁니다. 나에게는 기술에 대한 사실이던 문장이 상대에게는 사람의 값어치에 대한 판정으로 들릴 때입니다.
자신의 강점과 성취를 스스럼없이 드러냅니다. 내가 잘한 것을 굳이 감추지 않습니다.
가운데 구간에는 열 명 중 네 명이 듭니다. 이 눈금에서 가장 조용한 자리입니다. 잘하는 것은 필요할 때 말하고, 말한 뒤에는 그 화제를 놓습니다. 더 나은 두 선택 사이의 절충이 아니라, 양 끝에서만 눈에 띄는 물음의 평범한 기본값입니다.
낮음과 보통, 높음은 존슨이 쓰는 30/40/30 백분위 관행으로 갈릴 뿐 사람됨에 대한 평가가 아닙니다. 이 척도가 읽는 것은 자기 자리를 스스로 어떻게 말하는가여서, 속으로 겸손한지 보는 앞에서만 겸손한지는 가려내지 못합니다.
답 하나에 1점에서 5점이 붙고 문항이 열 개이니 원점수는 10점에서 50점 사이에 놓입니다. 아래 곡선은 긴 판을 끝까지 마친 135,947건에서 나왔습니다.
| 백분위 | 원점수 |
|---|---|
| 10 | 22 |
| 25 | 27 |
| 50 | 31 |
| 75 | 36 |
| 90 | 40 |
프로필의 절반이 27점과 36점 사이에 들어가고, 31점은 표본 전체에서 51번째 백분위에 섭니다. 같은 31점이 남성에게는 59번째, 여성에게는 46번째입니다. 백분위가 견주는 상대는 온 세상이 아니라 성별과 나이대가 같은 응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집단 평균은 갈라지는데, 나이 선이 이 요인의 나머지 척도들과 다른 쪽으로 갑니다.
여성 평균 31.7점, 남성 29.4점으로 40점 폭에서 2.2점 차이이고, 서른 척도의 성차 목록에서는 한가운데쯤입니다. 놀라운 쪽은 나이입니다. 남성은 21세 미만 29.8점에서 60대 이후 30.1점, 여성은 31.7점에서 32.4점으로 평생 한 점을 채우지 못합니다. 같은 기간에 신뢰와 솔직성과 양보는 3점에서 5점씩 오릅니다. 60대 이후 칸에는 성별당 250명 안팎이 들어 있습니다.
우호성은 서로 다른 여섯 가지를 한 점수로 내놓고, 그중 이 척도가 가장 따로 섭니다. 식구 안에서는 솔직성 0.38과 양보 0.32가 그나마 가깝고, 이타성은 0.13, 신뢰는 마이너스 0.06으로 사실상 남남입니다. 요인 총점과도 0.48이라 서른 척도 가운데 제일 낮습니다.
일터에서 이 특성은 누가 무엇을 했는지 말해야 하는 순간에 드러납니다. 위쪽은 프로젝트를 설명하면서 자기 몫만 건너뛰고, 그 모습은 함께 일하기 편한 사람으로 읽힙니다. 예산이 말한 사람을 따라가는 곳에서는 같은 습관이 조용히 돈을 잃습니다. 아래쪽은 분명한 사람으로 읽히고, 대신 방이 일보다 그 말을 더 크게 듣는 위험을 집니다.
사람 사이에서 이 척도는 견주는 말이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정합니다. 위쪽은 누가 더 잘 지내는가로 대화를 바꾸는 일이 드물어 곁이 편안하고, 가까운 사람은 그가 무엇을 얼마나 마음에 두는지 끝내 모를 때가 있습니다. 아래쪽은 셈을 밖에 두어 맞추기가 쉽고, 가끔은 아무도 시작하지 않은 겨루기처럼 도착합니다.
성장 쪽에서 볼 것은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이 습관이 어느 방에서 켜지는가입니다. 같은 사람이 친구 앞에서는 자기 기술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평가 자리에서는 그 이야기를 삼킵니다. 눈여겨볼 자리는 두 방 사이에 벌어진 그 틈입니다.
쌍둥이를 견준 연구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런 차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를 물려받은 몫으로 셉니다. 남은 절반에서 큰 조각은 형제끼리도 똑같이 겪지 않는 각자의 경험 쪽에서 옵니다. 여기까지 겸손은 나머지 스물아홉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척도가 갈라져 나오는 자리는 유전이 아니라 나이 곡선입니다.
우호성은 나이와 함께 오르는 요인으로 알려져 있고, 우리 규준에서도 신뢰와 솔직성과 양보는 실제로 오릅니다. 겸손만 제자리에 있습니다. 21세 미만 칸에서 60대 이후 칸까지 남녀 모두 한 점을 채우지 못하고, 이보다 덜 움직이는 것은 모험심 하나뿐입니다. 먼저 바뀌는 쪽은 사람이 아니라 형편입니다. 자기를 팔아야 하는 일자리는 성향이 따라오기 한참 전에 행동부터 바꿔 놓습니다.
300문항 판은 이 하위요인에 문장 열 개를, 120문항 판은 네 개를 씁니다. 답은 1점에서 5점까지이고, 반대 방향으로 쓰인 문장은 뒤집은 다음 더합니다. 그렇게 나온 원점수를 성별과 연령대의 규준표에 견주어 백분위로 읽습니다. 여기서는 열 문장 중 여섯이 반대 방향이고 짧은 판은 네 문장이 모두 그렇습니다. 아니라고 답한 것만으로 점수가 만들어지는 척도는 이 검사에 넷뿐입니다.
알파는 같은 척도의 문항들이 서로 얼마나 맞물리는지 보여줍니다. 연구에서는 0.70 이상을 탄탄하다고 봅니다. 이 수치는 존슨의 공개 자료로 저희가 직접 계산했으므로 발표된 값과 대조할 수 있습니다.
문항의 실제 문구는 이 페이지에 없습니다. 표현을 알고 온 응시자는 같은 문장에 다르게 답하기 때문에, 문구는 검사가 시작된 뒤에야 열립니다.
검사를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가 설 것 같은 자리에 슬라이더를 놓아 보세요. 그다음 문장에 답하고, 규준이 그 짐작을 어떻게 고치는지 보면 됩니다.
0은 이 검사를 받은 거의 모든 사람보다 낮음, 100은 거의 모든 사람보다 높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예상이지 측정이 아닙니다. 검사는 응답을 실제 사람의 규준과 비교합니다.
아닙니다. 구간을 나누는 방식 때문에 열 명 중 셋은 낮은 쪽에 놓이고, 그 대부분은 자기가 무엇을 잘하는지 말할 준비가 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 척도가 세는 것은 그 준비이지 사람을 낮추어 보는 마음이 아닙니다. 흔히 오만이라 부르는 것은 우호성의 여러 부분에서 한꺼번에 낮은 점수로 나타납니다.
일상어에서는 거의 다르지 않고 문헌도 두 말을 함께 씁니다. 우리 척도는 좁은 물음 하나만 던집니다. 이야기가 나왔을 때 자기를 남들 위에 두는 일이 얼마나 편한가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의 행동까지 담는 넓은 뜻은 HEXACO의 정직과 겸양 요인 쪽에 살고, 이 열 문장은 그것을 재지 않습니다.
우리 표본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40점 폭에서 2.2점쯤 높고, 이는 서른 하위요인의 성차 목록에서 한가운데쯤입니다. 이유로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방식과 각 집단이 무엇을 말하도록 배우는지가 함께 거론됩니다. 이것은 집단 평균의 차이이고 한 사람에 대한 예측이 아닙니다.
쉽게 그렇습니다. 겸손과 자기효능감, 곧 맡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감각의 관계는 마이너스 0.32이고 그 바깥에 각 척도의 아홉 할쯤이 남습니다. 자기 실력을 의심하지 않으면서 조용한 사람은 여기서 평범하고, 목소리가 크면서 스스로를 미덥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호성은 요인이고 겸손은 그 안의 여섯 하위요인 중 하나인데, 가장 덜 들어맞는 하나입니다. 요인의 나머지 부분과의 관계가 0.26으로 서른 척도 중 제일 낮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높게 나오고도 요인 총점은 가운데에 앉는 일이 흔하고, 따뜻하면서 자기 강점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사람도 모순이 아닙니다.
존슨이 공개한 자료로 계산한 알파는 열 문장 판 0.78, 네 문장 판 0.74입니다. 둘 다 쓸 만하고 둘 다 서른 하위요인 중에서는 아래쪽에 놓입니다. 한 가지 좁은 느낌이 아니라 여러 상황에서 문장을 모아 온 척도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짧은 판은 정확도를 내주고 속도를 삽니다.